한국 사회에서 입시는 단순한 시험이 아니다. 그것은 ‘출발선’을 결정하는 기제로 기능하며, 그 누구도 이 제도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입시는 개인의 삶을 가늠하는 첫 번째 척도로 여겨지며, 때로는 가족 간의 갈등, 사회 계층의 고착, 감정의 억압까지 불러일으킨다. 그래서일까, 수많은 한국 영화들이 입시 경쟁을 단지 교육 제도의 문제로 다루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로 인해 뒤틀리고 고통받는 개인과 사회를 정면으로 응시하고자 한다.
본 글에서는 입시 경쟁을 주요 서사적 축으로 삼거나 그로 인해 벌어지는 파열음을 중심으로 전개된 한국 영화들을 분석하며, 이들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비판적 시선과 함의를 고찰하고자 한다.
《파수꾼》 — 실패한 우정이 아니라 붕괴된 구조
윤성현 감독의 데뷔작 《파수꾼》(2011)은 입시 경쟁의 압력 하에서 청소년기의 감정과 관계가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정밀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고등학생 기태와 도훈, 희준 세 친구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겉보기에는 '우정의 균열'로 보이는 이 서사는 실은 교육 시스템과 사회 구조의 압박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기태는 겉으로는 거칠고 위악적인 성격이지만, 내면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불안을 간직한 인물이다. 그는 경쟁에서 밀려난 자신을 점점 비관하고, 친구 관계마저 소유와 통제의 방식으로 이해하려 한다. 이러한 불안은 단지 개인적 문제로 치부될 수 없다. 그는 성적에 의해 가시적으로 서열화되고, ‘좋은 대학’이라는 목표 앞에서 모든 감정이 무력화되는 교육 환경 속에 있다.
《파수꾼》은 소리 높여 입시를 비판하지 않는다. 대신 경쟁이 인간성을 어떻게 갉아먹는지를, 청소년기의 관계와 감정이 어떤 식으로 마모되는지를 조용하고 치열하게 보여준다. 결국 친구의 죽음과 남겨진 자의 고백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성공이란 무엇이며, 그 길에서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공부의 나라》 — 사랑으로 포장된 광기
다큐멘터리 《공부의 나라》(2022)는 고등학생, 학부모, 교사 등 입시 시스템의 당사자들을 인터뷰하며 한국 교육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카메라는 자극적인 편집이나 감정적인 해석을 자제하면서도, 입시 경쟁이 어떻게 하나의 '국가적 질병'처럼 작동하는지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이 영화의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는, 한 학부모가 아이의 일정을 분 단위로 관리하며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 순간이다. 부모는 ‘사랑’이라 말하지만, 아이에게 그것은 ‘강요된 생존’에 가깝다. 이처럼 입시는 가족 내에서도 권력과 통제의 장치가 되며, 감정은 기능적 수준으로만 존재한다.
대학에 들어온 후 이 영화를 본다면, 입시라는 시스템이 단지 청소년만을 억압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부모는 자녀를 통해 자신의 사회적 실패를 보상받으려 하고, 교사는 실적 압박에 내몰리며, 학생은 자기 인생을 성적으로 증명하려 한다.
《공부의 나라》는 입시를 둘러싼 각자의 역할이 실제로는 얼마나 병든 연극에 가까운지를 보여준다. 입시는 경쟁의 장이 아니라, 집단적 자기기만의 무대였던 것이다.
《소녀들》 — 엘리트 교육이 빚어낸 통제의 시스템
연제광 감독의 《소녀들》(2022)은 체육 명문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승리와 기록, 실적 중심의 교육이 어떻게 학생을 인간 아닌 도구로 만들 수 있는지를 그린다. 주인공 세진은 유도 유망주로 입학했지만, 곧 시스템의 모순과 교사의 폭력을 마주한다.
입시는 여기서도 배경이자 전제이다. 운동선수 역시 내신을 관리하고, 대학 진학을 목표로 삼아야 하며, 교사들은 실적을 위해 학생의 몸과 정신을 관리하고 조작한다. 학생의 의사는 존중되지 않으며, ‘지도’라는 이름 아래 감정과 주체성이 지워진다.
《소녀들》은 단순히 체육계 내부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적이라는 언어 대신 '기록'이라는 숫자를 사용하는 방식이 다를 뿐, 그 구조는 일반 입시 경쟁과 다르지 않음을 드러낸다. 성적을 위해 감정을 누르고, 개인을 시스템에 맞추는 과정은 운동이든 공부든 동일하게 재현되는 한국 교육의 통제적 본질을 보여준다.
《너와 나》 — 사랑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청춘
조현철 감독의 단편 《너와 나》(2023)는 입시를 앞둔 두 여고생의 관계를 다룬다. 수현은 친구 유미에 대한 감정을 숨기고, 표현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지금은 ‘시험’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직접적으로 입시 경쟁을 묘사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의 모든 공기는 시험과 결과, 평가에 점령되어 있다. 학생들은 감정을 미루고, 감정 표현을 통제하며, 삶의 진짜 의미는 입시 이후로 유예된다.
감정의 부재는 교육 시스템의 결과다. 사랑, 우정, 두려움, 질투조차 ‘지금은 감당할 수 없는 사치’가 된다. 《너와 나》는 이 같은 정서적 박탈을 매우 조용하지만 깊이 있게 드러내며, 입시가 단지 공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 발달까지도 억압하는 사회적 조건임을 고발한다.
맺으며 — 시험은 끝났지만, 경쟁은 계속된다
입시 경쟁을 비판한 한국 영화들은 공통적으로 시험 자체보다 그 시험을 둘러싼 사회적·정서적 구조를 더 깊이 들여다본다. 《파수꾼》은 청소년기의 붕괴된 감정을, 《공부의 나라》는 시스템적 광기를, 《소녀들》은 엘리트 시스템의 폭력을, 《너와 나》는 감정 유예의 현실을 조명한다.
우리는 더 이상 입시의 기술을 논할 수 없다. 이제는 그것이 빚어낸 사람, 관계, 사회를 돌아봐야 할 때다. 경쟁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으며, 그로 인해 어떤 가치는 파괴되었는가?
시험이 끝나고 교문을 나서는 순간, 진짜 경쟁이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영화라는 렌즈를 통해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