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를 통과한 우리는 도달한 줄 알았다. 정답을 맞히는 능력, 오차 없는 계획, 명문대라는 금빛 라벨. 그러나 막상 그곳에 와보면, 대학은 출발점이 아니라 입시의 후유증이 머무는 중간 기착지에 불과했다. 많은 대학생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 말속엔 열패감도, 허탈함도, 그리고 약간의 슬픔도 담겨 있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열은 단순히 부모 세대의 헌신이나 청소년기의 고단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대를 관통하는 신념이자, 각자의 선택을 교묘히 제한하는 구조적 힘이다. 최근 개봉한 한국 영화들 역시 이러한 교육열의 명암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한다. 이번 글에서는 2020년대 개봉작을 중심으로, 대학생이 된 이후에 다시 돌아본 교육열의 풍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불도저에 탄 소녀 (2022)
공식적으로는 폭력과 복수, 그리고 가족 서사에 가까운 영화다. 하지만 대학생의 시선에서 이 작품을 바라보면, ‘교육열이 강요한 삶의 단일성’이 배경처럼 떠오른다. 주인공 해영은 학교 폭력 사건으로 퇴학당한 뒤, 학업을 포기한 채 살아간다. 그런 그녀를 향해 주변 인물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공부 안 하면 뭐 하고 살래?”
여기서 중요한 건, 해영이 현실적으로 실패한 인물처럼 비춰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사고 원인을 추적하며, 타인보다 훨씬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재구성해나간다. 물론 과정은 거칠고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을 방식이지만, 중요한 건 ‘주체성’이다. 학력도, 스펙도 없는 10대 소녀가 세상과 맞서는 모습은, '공부' 이외의 가치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우리의 과거를 반성하게 만든다.
《불도저에 탄 소녀》는 묻는다. 왜 우리는 한때 ‘성적’ 외의 무언가를 고민해 볼 기회를 갖지 못했는가? 왜 공부를 안 하면 위험한 인생이 될 거라, 그렇게 강하게 믿어야 했는가? 대학에 들어와 비로소 다양한 가치관을 접한 지금, 이 영화는 교육열에 대한 통쾌한 반격처럼 느껴진다.
너와 나 (2023)
고등학교 3학년. 모의고사, 수시, 정시, 교과 비교과. 그 속에서 우리는 누구를 좋아할 여유도, 나를 들여다볼 틈도 없었다. 《너와 나》는 바로 그 시절, 두 소녀의 미묘한 관계를 통해 입시라는 구조가 감정을 어떻게 억압하는지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이 영화의 배경은 대입을 불과 며칠 앞둔 고등학교. 주인공 수현은 친구 유미에 대한 감정을 숨기고 있다. 학교는 온통 입시 분위기이며, 감정 표현은 일탈로 간주된다. 시험이 끝나야 연애도 가능하고, 사랑도 허락된다는 분위기 속에서 수현은 끝내 말하지 못한다.
대학생이 된 지금, 이 영화를 보며 깊은 공감을 느꼈다. 입시는 단지 공부만을 강요한 것이 아니라, 감정의 출입도 통제했다. ‘지금은 때가 아니야’, ‘대학 붙고 해라’는 말들은 사실 우리의 성장을 유예시키는 명령이었다.
《너와 나》는 입시가 한 인간의 감정 표현까지 얼마나 전방위적으로 억압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교육열이라는 이름 아래 숨죽였던 감정들이 어떤 방식으로 뒤늦게 폭발하는지를 알고 있는 우리에게, 이 영화는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울림을 남긴다.
카시오페아 (2022)
이 작품은 교육열을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그러나 주인공 수진의 삶을 돌아보면, 전형적인 한국식 엘리트 코스를 거쳐온 인물임이 분명하다. 변호사로 성공한 그녀는 독립적이고, 강인하며, 완벽해 보인다. 그러나 뇌질환으로 인해 점차 기억을 잃어가며, 그녀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배우게 된다.
이 영화는 일종의 ‘역행 성장 서사’이다. 기억이 사라지자, 수진은 다시 아이처럼 삶을 배운다. 책 대신 사람을, 실적 대신 감정을 중심에 두게 된다. 결국 그녀는 공부로는 배우지 못했던 삶의 의미를 알게 된다.
대학생의 입장에서 이 영화는 진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대학에 들어오기까지 너무 많은 것을 외워왔고, 너무 적게 느껴왔다. 《카시오페아》는 “공부 잘해서 뭐가 되려고?”라는 질문 대신, “기억을 잃고도 남는 게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교육열이 밀어붙였던 길 위에 서 있는 지금, 이 영화는 우리에게 길을 다시 묻는다.
말임씨를 부탁해 (2024)
이 작품은 ‘부모의 교육열’을 주제로 한 영화 중 가장 잔잔하면서도 날카롭다. 치매에 걸린 엄마를 돌보게 된 주인공은, 그간 외면했던 가족의 기억을 마주하게 된다. 과거 회상 속에서 그는 어머니의 극단적인 교육열, 자식에게 모든 걸 거는 집착을 떠올린다. 그 당시엔 답답하고 억압적으로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또한 ‘사랑’의 방식이었음을 알게 된다.
《말임씨를 부탁해》는 교육열에 대한 흑백 논리를 허물고, 그것의 복합성과 모순을 함께 말한다. 지나치게 뜨거웠던 부모의 열정은 때로는 자식에게 상처를 남기지만, 그 안에는 분명 진심도 있었다.
대학에 와서, 많은 친구들이 이렇게 고백한다. “그땐 왜 그렇게 엄마가 날 조이기만 했는지 몰랐어.” 《말임씨를 부탁해》는 그 말 뒤에 숨겨진 감정의 결을 차분히 따라간다. 단순히 교육열을 비판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그것이 남긴 상처와 온기를 동시에 보여주는 드문 작품이다.
결론
교육열은 누군가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는 문제다. 사회는 경쟁을 독려했고, 부모는 그 안에서 자식을 보호하려 했으며,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대학이라는 공간에 와서야 우리는 처음으로 ‘선택’이란 단어를 배운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묻는다. “나는 뭘 좋아하지?”,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가?”
2020년대 한국 영화들은 이제 단순히 입시의 고통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너머의 감정, 구조, 삶을 포착한다. 《불도저에 탄 소녀》는 공부 없는 삶도 가능하다고 말하고, 《너와 나》는 감정의 시기를 묻는다. 《카시오페아》는 기억을 잃은 후 남는 진짜를 묻고, 《말임씨를 부탁해》는 교육열의 양면성을 이야기한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질문을 던질 차례다. 교육열 이후,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가?